[Open_Artist] 관객을 끌어들이는 예술, 회화와 장식 사이 ‘루돌프 스팅겔’
오픈에디션에서는 국외,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그 작품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개념미술작가 ‘루돌프 스팅겔 Rudolf Stingel’(1956~)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해외에서는 미국 휘트니 뮤지엄, 런던 가고시안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을 누비며 전시회를 열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그의 최근작은 무려 200만 달러에 팔리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며, 많은 개인과 기관에서 소장할만큼 그 작품의 가치와 예술 활동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이다.
행위 예술의 영향을 받아 개념적인 회화, 설치 작업들을 병행하는 루돌프 스팅겔은 기존의 그림이나 개념예술에 대해 잊어버리고, 본능을 따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들은 전통적인 회화가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료 및 매체 중심의 한계를 탐구하면서 다양한 추상 회화와 포토리얼리즘 회화, 스티로폼 또는 금속으로 만든 대형 작품, 카페트로 채워진 공간 등을 제작하며 한가지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 작품활동을 하였다.
기존 미술계에 대한 회의
루돌프 스팅겔은 여러가지 창작활동을 통해 본인이 미술작가로써 기존 미술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과 회의를 끊임없이 드러냈다. 하얀 눈밭 위에 찍힌 새발자국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은 흰색 스티로폼 위에 라카 칠을 한 신발을 신고 올라가 그 위를 걸어다니며 화학작용에 의해 스티로폼 표면이 녹아 생긴 흔적들이다.
스티로폼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그의 행위는 미술계에 대한 회의가 담긴 파괴적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겠다. 현대예술에서 작가의 권위와 관객 사이의 경계가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과연 예술을 이루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자유롭게 흔적을 남기게 한 뒤, 남겨진 흔적 위에 금속 재질을 코팅시켜 만든 작품들은 작가와 관객의 공공창작물로써 관객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대부분을 참여하고, 작가는 개념적인 측면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Instructions / 출처 : artworklondon.com
작품 자체 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그가 가지는 예술에 대한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온 그는 자신이 어떻게 작품을 해나가는지 그 과정들을 사진과 함께 하나하나 설명해 놓은 ‘Instructions’이라는 제목의 아트 워크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인쇄물을 통해 자신의 작품 활동을 대중하게 널리 공개함으로써 미술계에 만연한 지나친 낭만주의를 지양하려는 그의 예술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공간
스팅겔은 카페트, 벽지 등을 이용하여 벽면과 바닥을 채우고 이를 모티브로 회화작업을 했다.
카페트로 둘러쌓인 공간, 2013 / 출처 : Palazzo Grassi.com
갤러리 방문객들은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깔린 카펫 위에 발자국을 남기게 되고, 손으로는 큰 붓질을 하듯 카펫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거나 거칠게 만들며 회화적인 제스처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관객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여 작품을 공적인 협력물로 만들며 예술의 미적 감상을 관계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문화적 위계질서, 예술 작품의 생산방식과 과정의 의미에 도전하고 있다.
회화와 장식 사이
스팅겔은 관객 참여작품 만이 아니라 사진, 회화 작업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Oil and enamel on linen, 2007 / 출처 : phillips.com
린넨소재의 천 위에 오일과 에나멜로 벽지처럼 문양을 새긴 작품은 추상과 형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그림의 관계 회화와 장식 사이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Oil on canvas, 241 x 589cm, 2018 / 출처 : arteez.ch
세 개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꽃으로 가득채워진 화면은 정물화도 풍경화도 아닌듯 모호한 경계에 놓여져 있다. 삼면화의 양 쪽 그림은 찍어낸듯 동일한 이미지로 보이지만, 다시 한번 보면 약간 밀린 채로 그려져 있어 반복되는 패턴의 벽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삼부작의 형식은 중세 유럽의 종교화에서 즐겼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화면을 더욱 웅장하게 보여준다.
분홍장미와 작약, 흰 백합과 푸른 빛의 국화, 붉은 양귀비 등 사실적인 꽃의 이미지로 채워진 거대하고 화려한 화면 앞에선 관객들은 대자연 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와도 같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를 맞이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림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참조:
Art on snow (SA:GAK 1월, 2월 통권 18번째호)
런던 에술가들에게 현대성이란?(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 5)
※ 본 게시물은 오픈에디션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