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_Artist] 절제된 감성의 미학 ‘조르조 모란디’
오픈에디션에서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그 작품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절제된 감성과 표현으로 그려낸 정물화의 대가 ‘조르조 모란디 Giorgio Morandi’ (1890.7.20 ~ 1964.6.18)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 Herbert List (출처 : Magnum Photos)
모란디는 삶의 대부분을 정물화를 그리며 보냈다. 각각의 물성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더욱 단순해진 형태의 정물들을 나열하여 배치하고, 모노톤에 가까운 색조를 사용하여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려했다. 절제되었지만 깊이감 있는 미묘한 색채와 사색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의 작품들은 볼로냐 현대미술관의 한 켠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모란디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모란디가 평생을 보냈던 집이자 스튜디오 ‘까사 디 모란디’ 에서는 그가 정물화의 소재로 사용했던 오브제도 볼 수 있다.
모란디의 예술은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수상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고, 전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을 정도로 그의 삶과 예술은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은둔의 화가
모란디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나 볼로냐에서 생을 마감한 작가이다. 자신이 사는 곳을 거의 떠나지 않고 작은 골방에서 평생을 작품에 몰두했던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작업 생각 뿐이었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세 명의 누이와 함께 볼로냐의 한 아파트에 살았는데, 3평도 안되는 작은 방 하나가 그의 침실이자 작업실이었다. 작업실도 따로 없이 같은 공간에서 특별할 것 없는 정물들을 평생 수 없이 그려낸 은둔의 화가 모란디.
당시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는 했지만, 그는 작업 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을 다소 불편해했다. 전시회를 많이 보게 되거나 여행을 다니게 되면 그 여운이 오랜 시간 남아 자신의 작업이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고, 심지어 볼로냐 이외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조차 꺼렸다. 1944년 레지스탕스 혐의로 잠깐 투옥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사건 사고도 없었던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볼로냐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판화를 가르치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Natura Morta, 본질을 찾아서
모란디의 정물화 작품명이기도 한 Natura Morta 는 죽은 자연, 생명이 없는 자연, ‘정물’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그는 모든 정물화에 동일한 제목을 붙였다. 17세기 말 프랑스 아카데미는 정물화를 지적, 예술적 엄숙함이 전적으로 결여된 장르라고 여겼다. 하지만 20세기를 살고 있는 모란디에게는 숨겨진 다른 의미를 드러내거나 상징적으로 죽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정물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물체를 본질 상태로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모란디는 시대를 따라 흘러가지 않았다. 1914년 볼로냐에서 미래파 화가들과 어울리기도 했으나, 지오토, 마사치오 등 초기 르네상스의 작가들과 인상주의의 거장 세잔의 영향을 받으며, 고전 양식을 혼합해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냈다. 추상미술이 활발하던 시기에 그는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며, 오직 빛과 공간과 형태의 본질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물론 물질은 존재하나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
우리는 오직 컵은 컵이며 나무는 나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가시적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이다”
일상적인 소재, 반복과 변주
모란디는 ‘병(bottle)의 화가’라 불릴 만큼 정물 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병을 모티프로 한 정물화를 다수 제작했다. 크기가 다른 화면 위에 비슷한 구성을 ‘반복’하기 시작했는데,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모란디는 정물을 마치 처음보는 것처럼 바라보며 물체 하나를 더하거나 빼거나 자리를 옮기기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실험했다. 그가 선택한 일상적인 소재들은 형태, 구조, 색에서 미묘하고 아름다운 변주를 보여주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크기와 생김새의 병, 그릇, 상자, 주전자 등의 정물들은 모란디와 평생을 함께한 소재였다. 벼룩시장에서 그릇과 병을 골라 병 안에 페인트를 붓고, 다 마른 병들을 오랜시간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 둔다. 쌓인 먼지는 유리, 금속, 자기 등 각각의 질감을 균일하게 만들어 주는데, 이러한 독특한 과정을 거친 정물들은 용도나 의미가 아닌 조형적 형태만이 남게 된다. 재질과 물성이 제거된 채 덩그러니 놓여진 정물들은 차분하게 균형 잡힌 색조와 정제된 붓질로 고요하지만 미묘한 울림을 주고있다.
모란디는 자신이 존경했던 세잔과 같이 가시적인 세계에 내재된 것들을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였다.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사색과 예민한 직관으로 작품에 독특한 질서와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낡고 평범해 보이는 정물에게 자기만의 색을 칠하고 먼지가 켜켜이 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바라보며,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았으리라.
* 참조
죽기 전에 꼭 봐야할 명화 1001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씨네21
볼로냐 미술관 http://www.mambo-bologna.org/museomor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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