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_Artist]
독자적 추상표현주의 ‘프랑수아 피들러’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그 작품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첫번째 작가는 독자적인 추상표현주의 스타일을 개발한 작가, 프랑수아 피들러 Francois Fiedler (1921.2.15 ~ 2001.10.21)이다. 국내에서는 번역된 자료조차 찾아보기 힘든 작가인 피들러는 호안미로, 자코메티, 마르크 샤갈과 더불어 프랑스의 중요한 예술가 중 하나로 꼽힌다.
1921년 헝가리 카사 Kassa에서 태어나 5세에 신동으로 불리우며 이른 나이부터 거장들의 고전 초상화 장르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10대 초반부터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일찌감치 재능을 펼쳤다. 부다페스트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1940년대 헝가리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40 년대 말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점차 고립되어가던 자국, 헝가리를 떠나 프랑스를 새로운 고향으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그는 얘기를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삶을 보내게 된다.
초반에는 모국과 관련된 비유적인 그림들을 남기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박물관의 유명한 그림들의 사본을 만들면서도, 틈틈이 소품 위주의 그림을 그려 가며 현실 속에서 작업의 끈을 놓치 않았다.
/ 우연한 만남, 그의 후원자 /
프랑스 정착 후 처음 하게 된 개인전에서 화가, 호안 미로 Joan Miro 는 그의 추상회화 작품을 보고 놀라게 된다. 이때부터 피들러의 작품들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로의 후원과 추천으로 곧 전설적인 미술상이자 발행인 매그 Aimé Maeght 를 만나게 되고, 브라크, 미로, 샤갈, 칼더, 칸딘스키, 칠리다, 자코메티, 마티스, 피카소, 리오펠, 타피에스 같은 20 세기 현대 미술의 주요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소개되며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1960년대 전시풍경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독창적이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그의 작품들은 현재 헝가리 국립 미술관 등 헝가리의 주요 공공 컬렉션 뿐만 아니라, 구겐하임 미술관, 퐁피두 센터, 폴락-크래스너 하우스 앤 스터디센터, 파리 매그 재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컬렉션에도 소장되어 있다. 그의 평생 교육을 장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피들러 재단’에서는 작품을 연구하고, 박물관, 주요 컬렉션과 협력하여 회고전을 주최하고 있다.
/ 우연한 계기, 추상화의 시작 /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의 작품세계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어느 날 문득 집 냄비에 묻은 얼룩이 햇볕을 만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고, 그는 이 과정을 캔버스에 재현하게 되었다. 이 우연한 계기로 그의 추상 예술은 시작되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작가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이 연상되는 페인팅 작품들은 실험적이면서도 극적인 강렬함이 담겨있다. 액션페인팅 작품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피들러는 확실히 다른 의도와 과정으로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는 액션의 즉흥적 요소 보다는 화면 안에서 붓질의 흐름과 표현의 과정을 중요시했는데, 이것은 그가 한동안 빠져 있었던 서예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더하여 그의 작품들은 흙이나 돌과 같은 자연도구를 활용하여 표면을 보다 강하고 거칠게 표현하고자 했다.
“나는 페인팅 작업을 할때 드라마틱한 힘을 느낀다.
캔버스의 회화적 에너지는
나를 매료시키며 이를 통해 나는 리듬의 자유를 느낀다.”
– 프랑수아 피들러 Francois Fiedler –
/ ‘연금술사가 된 작가’ 판화에 빠지다 /
화면을 가득 메운 붉은 색면이 로스코의 색면 추상회화를 연상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부드러운 선의 표현이 가능한 판화 에칭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페인팅 작품과 더불어 그는 수년간 에칭 기술, 석판화 작업을 연구해가며 캔버스에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과 의미를 판화 작품에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우 엄격한 작업과정이 연금술과도 같은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독특함과 다중성을 지닌다. 작품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통해 피들러는 보다 근본적인 작품세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거친 그의 작품들 중에서 몇 안되는 화사한 컬러의 위 작품은 진흙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를 발견한 듯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963년 석판화 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색상의 터치가 중첩되어 은은한 로즈핑크 색감으로 완성된 매력적인 작품이다. 페인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사함이 이 작품에서는 색감과 중첩된 패턴을 통해 뿜어져나오고 있다. 색감의 중첩으로 인해 극도로 아름답게 표현된 화면은 마치 미세한 우주 세계를 보여주는 듯 신비롭고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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