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실내 풍경, 창 window 과 책 읽는 여인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 여겨지는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1869.12.31-1954.11.3)는 20세기 회화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야수파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거장으로 불리운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부터 단순한 형상에 보색 관계를 살린 원색의 야수파 스타일, 그리고 독보적인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컷아웃 Cut out 작품까지 정물, 풍경, 인체, 초상화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어떤 대가들의 그림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일상에 에너지와 휴식을 안겨준다.
마티스는 일찍부터 화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법학 전공을 한 그는 건강 문제로 요양하던 중 어머니가 사주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 화가로서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893년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세잔의 영향으로 어두운 색조의 정물화, 풍경화를 그렸다.
색조의 변화, 활기 넘치는 그림들
1905년 여름, 지중해 연안의 콜리우르에서 앙드레 드랭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화창한 풍광만큼 밝아진 색조는 아프리카, 모로코 등지를 여행하면서 받은 영감으로 인해 빨강, 초록, 주황과 파랑, 노랑과 보라 등 강렬한 보색대비로 바뀌었다. 자연광이 포함된 색조로 보다 활기 넘치는 그림들을 그리게 된 마티스는 색채 그 자체가 아닌, 색채를 통해서 사물의 형태와 조형성을 화면에 담고자 했다. 191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 남부지방 니스에서 지중해 풍경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특히 바다의 푸른 색과 빛의 강렬함을 재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내면의 시선으로 담아낸 실내 풍경
1918년부터 1921년 사이 마티스가 종종 머물던 니스의 한 호텔 객실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섬세하게 표현된 색채와 빛으로 인해 마치 파스텔화를 보는 듯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여인의 뒷 편에 열려있는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공기는 실내에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바깥 세상과 실내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른함을 풍기며 책을 읽고 있는 여인과 실내에 드리워진 그림자, 테이블 위에 있는 정물들, 그리고 왼쪽 하단까지 길게 그려진 커튼은 그림 안에서 조화롭게 자리하며 안정감을 주고 있다. 옅은 노랑과 회색, 핑크의 한 부분과 유난히 파랗고 선명한 바다 풍경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며 실내 공간이지만, 지중해의 풍광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창(窓), 그림 안의 그림
햇살이 비치는 실내 한 가운데 앉아있는 여인은 책을 읽다말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세로로 긴 캔버스의 바닥까지 뻗어있는 하늘색 프랑스식 창문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창문 너머 보이는 황금빛의 풍경과 함께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이 따사롭다.
마티스는 유난히 창문을 좋아하였고, 많은 창(窓)을 작품에 담아냈다. 창은 공간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줌과 동시에 동일한 공간 속에서 분리가 아닌 그림 안에 또 하나의 그림으로서 자리잡는다.
“창(窓)은 내게 있어 공간이라는 수평선으로부터 나의 작업실 내부로 이르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창문 너머 지나가는 배들도 내 주변의 친근한 사물들과 동일한 공간 속에 존재한다.
창문이 있는 벽은 두 개의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여인
마티스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얼굴과 인체를 자유롭게 변형하고 거침없는 색채를 사용하였기에 선뜻 모델이 되겠다고 나서는 여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아내와 딸을 모델로 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녀들은 마티스가 그 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중요한 존재였다. 몇몇의 여인들이 그의 작품에 모델로 등장하였고, 말년의 연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모델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를 포함하여 여성 모델들을 화폭에 담은 마티스는 책읽는 여인과 소녀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마티스의 실내 풍경 속 여인은 남성이나 주변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닌 책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자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 작품은 왼쪽 한 켠 캔버스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을 한가로이 담아내고 있다. 블랙으로 채워진 뒷 공간에 자리잡은 둥근 거울에는 화병과 그 너머로 바다 풍경이 보인다. 창문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울 속의 풍경이 이 그림의 공간과 보는 이의 감각을 확장시켜준다.
말년에 마티스는 아내와 헤어지고 다 큰 자녀들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져 고독한 생활을 보냈다. 관절염과 폐렴, 심근경색 등 병으로 고통스러운 노후를 보내야 했던 마티스는 다행히도 말년에 니스가 내려다 보이는 널찍한 화실에서 그의 모델이었던 러시아 여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긴 막대에 크레용을 매달아 그림을 그릴 정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의 작품 세계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지중해의 풍광이 느껴지는 그의 실내 풍경 그림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보다 도심의 소음이 느껴진다면 지중해의 햇살과 책읽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마티스 곁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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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그림같은 세상, 황경신, 2002, 아트북스
http://www.musee-matisse-ni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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