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詩로 읊어나간 그림 – ‘호안 미로’의 독백
작품세계를 간단히 논하기도, 사조를 한가지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스페인의 작가 호안미로 Joan Miró. 그에 대해 쓰거나 말할 때 흔히 등장하곤 하는 교과서적 정의, 즉 ’20세기초 추상과 초현실주의를 결합을 보여준 서구미술계의 대가’ 라는 말에는 중대한 뭔가가 생략돼 있는 것 같다. 작가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시대순으로 그림을 찾아보다 유독 시선을 멈추게 하는 특정 시점에 발길이 머물렀다. 1920년대 전후. 과연 이 때 호안미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미술을 반대했던 부모님 탓에 일반 회사에 입사했던 그가 1912년 입학한 ‘프란세스크 갈리 미술 아카데미’는 훗날 그가 구축한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곳이 된다. 스페인의 화가이자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프란세스크 갈리 Francesc d’Assís Galí는 호안미로에게 눈을 가린 채 손의 감각으로만 관찰한 사물을 그리게 하는 한편, 많은 시와 음악을 소개했다. 기술이나 이론이 아닌 오직 내면의 것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후 1919년에서 1924년에 걸쳐 시인 트리스탕 차라 Tristan Tzara,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 과 활발히 교류한 후, 복잡하고 빽빽했던 그의 그림은 점차 느슨해지고 그 자리에는 여백과 서정성이 자리잡게 된다.
별 안에서 성숙해지다.
짧기만한 청년기.
너는 늙은 무리의 길을 너의 편에 두지 않았다.
강하고 가시적인 날들.
< parler seul 에디션에 삽입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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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gere dans le soleil des cloches
je t’ai vue fugitive aux bras de feuilles mortes
rien qu’une fenetre donnant sur l’air des libres barques
le feu s’est etrangle dans la tete errante
태양의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죽은 잎의 팔로 도망치는 너를 보았다.
자유로이 유영하는 보트를 바라보던 창문은 방황하던 머리안에서 목이 졸린다.
< 트리스탕 차라의 Parler seul 中 >
호안미로의 Parler seul 시리즈에서 잠시 시선을 떼어 시를 읽어보고, ‘독백(Parler seul)’ 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음미해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호안미로가 작품에 투영한 시적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쯤 되니 특정 시기에 달라진 호안미로의 작풍을 캐치해낸 자신이 조금은 뿌듯해졌다. 숨가쁘게 쏟아지는 수많은 이미지와 그림들에서 벗어나 이런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그림을 감상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 이건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으나 무심코 잊고 살았던 어떤 진리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작가건 특정 시기의 경험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 작품에 반영되기도 한다. 이 자체는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문학적 감수성이 깊게 응집된 시 詩적 표현이 느껴지는 그림이라는건 아무리 봐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본 호안미로의 그림은 한편의 시와 같고 트리스탕 차라의 시집에 실린 시 또한 한점의 그림과 같다. 동명의 제목인 Parler seul 은 시나 그림 모두에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오픈에디션에서 선보인 Parler seul 에디션만큼은 시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탄생한 호안미로의 작품이자, 작가의 독백으로 그려진 한 편의 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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