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 해독하기
Q. 작품보다 작가의 삶을 향한 관심과 영향력이 꾸준히 지속되는 아티스트는?
수년간 예술계와 패션계, 미술 애호가들의 한결같던 ‘앤디워홀’ 이란 대답은 어느새 과거의 것이 되고 바통을 이어 받은 아티스트가 있다. 그 중 몇 가지 사실 만으로도 더 흥미가 유발되는 팩트들.
세상을 떠난지 30년. 20대 후반에 작고했으며 활동한 8년여 기간 중 총 2500여개 작품을 남긴, 최고로 인기 있고 비싼 작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다.
패션아이템과의 협업은 물론 올해 초 천억원대에 원작이 팔리며 사망 후 몸값을 최고로 경신한 그이기에, 그의 작품이 왜 좋은 것인지 구구히 설명하는 일은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수십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그에 관한 글과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웹페이지, 현학적 미술용어들로 나열된 글들도 영 읽히질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바스키아를 향한 분석도 뒤로 하고 내 취향에 잘 맞는지 아닌지도 걷어내고 사심 없이 그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상징으로 채워진듯 보이는 그것들. 난해한 암호처럼 보이는 바로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이 단순한 호기심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 속 몇 가지 기호와 텍스트에 접근해 보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1. 왕관
그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왕관 Crown 모양이다. 특정 아티스트 그리고 흑인들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 이 왕관 모형은 훗날 왕관만을 그려 넣는 것 외에 점차 본인의 서명 대신 사용했을 정도로 소유권과 권위를 나타내는 ‘도장’ 과 다름 없는 부분이 되었다.
– 주관적으로 바라본 시선에선 야망 ambition 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존중보다 조금 더 나간 느낌의 야심과 자신감.
2. 사람 이름
바스키아는 특정 아티스트를 향한 존경과 친애를 직접적으로 담았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명시하거나 그 아티스트의 창작물 제목을 적기도 하며, 왕관을 씌워주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위 이미지 상 왼쪽부터 차례로, 색소폰 연주자 찰리파커 Charlie Parker, 권투선수 무하마디 알리 Muhammad Ali, 복싱선수 슈거 레이 로빈슨 sugar ray robinson 가 바로 그 대상이다. (첫번째 이미지 상 ‘Now’s the time’ 은 찰리파커의 곡 제목, PRKR은 찰리파커의 약어이며, 무하마디 알리의 본명이 Cassius Clay다.) 이들과 바스키아의 공통점이자 연결고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흑인’ 이라는 것.
– 바스키아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냥 아티스트다.’ 라고 말한게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감이나 동시대 혹은 과거를 살았던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연대의식과 존경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알파벳 A, 그리고 해골 형태
그의 그림 속 ‘AAAAA’ 형태로 등장하는 반복적인 이니셜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바스키아의 첫 번째 흑인 영웅인 야구선수 행크 아론 Hank Aaron의 성 첫 글자의 의미도 포함된다. 해골 형태의 인물과 신체 부위들은 그가 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당시 어머니가 선물한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의 영향을 받은 것.
– 어린시절에 머물러 있는듯한 순수함, 강박적이면서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강렬히 호소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진다.
4. 바스키아의 언어들
그의 작품을 ‘낙서’ 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빼곡히 혹은 헐겁게 적어내려간 단어들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단어들을 적어봤다.
alchemy, an evil cat, black soap, corpus, cotton, crime, crimée, crown, famous, hotel, king, left paw, liberty, loin, milk, pure, negro, cigar, nothing to be gained here, Olympics, Parker, police, PRKR, sangre, soap, sugar, teeth.
신비한 힘, 사악한 고양이, 검은 비누, 코퍼스, 면, 범죄, 왕관, 유명한, 호텔, 왕, 왼쪽 발, 자유, 둔부, 우유, 순수함, 흑인, 담배, 여기선 얻지 못할 것, 올림픽, 파커, 경찰, 피, 비누, 설탕, 치아.
– 단어들의 나열에서 오는 공통적인 감수성은 그의 유년기와 활동시기의 미국 상황 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거나 그의 영혼 어딘가를 빙빙 돌며 그를 ‘놓아주지 않는’ 어떤 것들이다. 그는 어떠한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을 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
작품 속 은유와 상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일차원적으로 해독한 위 내용은 생전 작가의 인터뷰, 각종 문헌과 글을 종합한 후 주관적 감상을 덧붙인 것이다. 이런 특성들을 알아가는동안 나 역시 전보다는 바스키아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라는 시인의 어구가 때론 그림에도 통한다. 작가가 분방한 태도로 작업한 그림을 해독하고자 노력하는 사이 자연스레 그의 영혼이 감상자의 마음에 스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예술의 힘 power라는게 있다면 이런 것일까.
이런식으로 작가의 그림 속 기호들을 ‘해독’을 하는 방법과 과정은 작가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노하우다.
물론 바스키아의 그림 속 몇 가지 기호와 문자들의 의미를 안 후에도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말하듯 막연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아니, 이런 해독 없이도 바스키아의 세계관에 흠뻑 매료된 사람들은 이미 많다. 혹자는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특유의 거친 터치감과 저항정신이 느껴지는 무드가 취향저격이라고도 한다. 거기에 바스키아는 살아 생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의 표현방식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역사로 빛나는 인물이다. 당시 바스키아의 센세이셔널함이 여기에 있다면 오늘날 바스키아가 받는 사랑은 거듭 반복되는 그의 그림에 대한 해독과 접근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 것, 한번 더 되돌아보게 만드는 마력. 바스키아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그가 펼쳐놓은 영혼의 모습, 즉 빨갛고 노랗고 네모지고 세모난 것들은 이런식으로도 사랑받고 재해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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