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리히터’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다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독일의 대표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1932. 2. 9~)는 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작가라 평가받는다. 생존작가의 작품 중 가장 최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스타일만큼이나 전세계 컬렉터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진 이미지를 부드럽게 모사한 사진회화와 표현적인 붓질이 강하게 다가오는 추상화. 모두 한 작가가 그린거라니, 다채로운 작품세계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각기 다른 양식의 그림들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1932년 동독에서 태어나 일찍이 광고디자인과 무대 배경을 그리는 일을 하던 리히터는 초기에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보수적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서독으로 이주 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야 그곳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예술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리히터의 작품세계는 1960년대 초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과 팝아트, 미니멀아트, 플럭서스 등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미술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그의 포토리얼리즘 회화는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응하며 일어난 독일 버전 팝아트라 볼 수 있다.
회화의 영역을 넓히다
1960년대부터 사진 이미지를 옮겨 그리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모색했고, 극사실주의적인 풍경화, 유명인들의 초상화, 기하학적인 컬러차트 시리즈를,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추상회화를 제작했다. 그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회화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며, 누구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게 회화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나는 내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예기치 못한 선택과 우연, 영감 그리고 파괴의 요소들로 만들어지는 특정한 타입의 회화,
하지만 결코 미리 정의되지 않았던 회화.
나는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흐리다, 포토페인팅
1960년대 독일미술에는 앵포르멜과 팝아트에 맞서 대립되는 두 흐름이 일어났다. 하나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와 안젤름 키퍼의 신표현주의, 이들은 독일표현주의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사진과 대중문화를 배격하고 회화를 통해 독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다른 하나는 리히터의 작업들, 그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전통회화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며 사진을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특히 신문 및 잡지에서 스크랩 한 사진을 바탕으로 한 포토페인팅 Photo Painting 은 회화의 여러가지 표현 기법을 실험하며 그려낸 리히터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이다.
신문, 사진 스크랩 자료를 패널에 붙여 제작한 시리즈 (사진출처: gerhardrichter.com)
당시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결구도를 형성했고, 결국 추상회화에서 답을 찾아나갔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의 특성에 매료되어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 혹은 신문, 잡지에서 고른 사진을 캔버스에 물감으로 흐릿하게 담아낸 그의 작품은 사진의 리얼리즘과 회화의 붓질이 결합되어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해석된 사진 이미지는
모사과정에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쳐진 이미지를 따라가는 작업과정에서
나는 기계처럼 일할 뿐이다.”
자신의 그림을 원본인 사진, 그리고 여느 화가들의 그림과 다르게끔 만드는 것은 이미 완성된 그림 위를 지나가는 붓질이다. 그림이 마르기 전에 마른 붓으로 화면 전체를 지나며 윤곽을 흐릿하게 만드는데, 화면에서 모호해지고 지워진 듯한 형체는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이끈다.
“유일하게 역설적인 것은 이것이다.
언제나 적절히 구성된 모티브를 가지고 시작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그 의도를 파괴하여
마침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개방성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
흐릿해진 대상을 명확하게 잡지 못하게 함으로써 작품에 최종적인 의미를 주지 않으려했다. 이로써 대상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열리게 되는 것이다.
노출증으로 악명이 높았던 미국 화가 브리짓 포크를 그린 이 작품은 그녀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기운 넘치는 포즈가 흐릿한 이미지로 그려져 어딘가 아스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상주의 작품처럼 회화적 느낌을 주고있다.
“정확하게 초점이 맞은 이미지보다
흐릿한 캔버스를 통해 더 많은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이 갖는 구상적 요소와 붓질이라는 추상적 요소가 결합된 포토페인팅은 회화의 종말을 운운하던 시기에 등장한 리히터표 회화였다. 많은 화가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던 주관적 표현성보다는 회화의 조건 자체를 고민하는 개념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유성을 재확인시켜 준 작업이라 평가받고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 풍경화
카메라로 직접 찍은 풍경사진들을 포토리얼리즘 회화로 담아낸 그의 풍경화에는 다채로운 색채와 자연의 생동감 같은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연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보다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자연은 마음이 없다.
우연하게도 나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고, 마음없이 움직이는
자연처럼 일하고싶다.”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단순한 구도의 풍경화 작품들을 통해 관람자가 회화와 사진, 자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랐다.
우연의 도상학, 컬러 차트
기하학적 도상과 선명한 윤곽이 특징인 추상회화, ‘하드엣지’를 연상케하는 컬러 차트 시리즈는 색상표를 기반으로 자신의 미술작업을 보다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60년대 말부터 다양한 칼라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색을 무작위적으로 배열하여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키도 하는 컬러 차트는 우연의 도상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리히터는 실제로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우연과 불안, 스퀴즈 회화
리히터는 1976년부터 기하학적인 선과 모양의 추상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특히 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마르기 전에 롤러 스퀴즈로 표면을 밀어내는 기법으로 제작된 아래의 추상화 시리즈는 우연과 불안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화면은 긁거나 흐릿하게 하는 작업들은 불안함 속에서 드러나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모든것을 그대로 두고 싶다.
어떤 계획도 따로 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고 생략하는 것도 없다.
필연적으로 계획해야하고 발명해야한다.
바꾸고 만들고 솜씨있게 만져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 안다는 것을 통째로 모르겠다.”
일명 스퀴즈 회화로 불리우는 그림은 붓으로만 그리는 거라고 여기던 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
리히터는 1960년대 포토페인팅 작품을 제작하며, 완성된 그림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후에 1980년대에 와서는 부드러운 붓터치로 대상을 아련하게 그려내며 빛, 기운, 분위기 등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다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림의 소재는 많고 많지만, 자신만의 방법과 스타일은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림의 대상은 대부분 리히터의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 사물들이다.
1994년 머리를 단정하게 묵은 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부드럽고 섬세한 붓질로 그려낸 작품이다. 따스한 빛이 아주 환하게 아내의 머리와 목덜미를 비추며, 보는 이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그림은 그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림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거나 희망을 찾는다. 대상의 단순한 묘사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실재 세계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들은 회화가 가지는 본질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참조
gerhard-richter.com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 북스, 2009
영화< 작가미상>,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2018
다큐, 코린나 벨츠 감독,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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