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욕망의 초상 ‘에곤 쉴레’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6.12 ~ 1918.10.31) 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작은 도시 툴린에서 태어나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성적 욕망, 그리고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였고, 주로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표현하였다. 천재적인 재능을 시기하는 듯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그는 거장 ‘클림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짧은 생애동안 3500여점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업에 미쳐있던 작가였다. 도발적이고 에로틱하면서도 불안감이 감도는 화풍으로 당시 유럽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의 작품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Standing in a Frofile, 1908

초기에는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장식적이고 드라마틱한 양식을 보이다 점점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만들어갔다. 장식적인 특징을 넘어서 격렬한 감정을 표출시키며 쉴레만의 표현주의를 발전시켜 갔다. 클림트와는 대조적으로 어둡고 도발적인 그의 작품들은 화면 위에서 격렬한 붓놀림으로 불안에 떠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루었다. 윤곽선 또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표현주의적인 격렬한 감정 표출 형태로 사용되었으며, 적나라한 에로티시즘을 과감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쉴레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는 1908년, 전통에 의지하지 않는 저항적 모임인 ‘빈 분리파’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으며, 학교를 나온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1913년 쉴레는 클림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예술가 동맹’의 회원이 되었으며, 빈 분리파 전시회에 참여하게 된다. 1915년 그의 모델이자 동거녀 발레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중산층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대에 징집되기도 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유럽의 주요 전시회에 다수 참가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음과 동시에 미술계에서는 큰 주목을 받게 된 그는 1918년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클림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내면의 초상, 자화상

 

쉴레 작품의 대다수는 자전적인 진술로 해석되는데, 특히 그는 100여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려고 했다. 넓은 여백을 배경으로 뼈만 남은 듯 앙상하고 메마른 몸과 불안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표현된 자화상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자화상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다.
그가 지나치게 자신의 해체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글퍼 보였다.”
-프리드리히 스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인물들의 자세와 움푹 패인 골격들 사이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각기 다르겠지만, 마치 하나의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들게 한다. 바로 쉴레 자신의 모습 말이다.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 에곤 쉴레 –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

쉴레는 회화는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는 특히 여인과 소녀들을 모델로 한 누드화에서 두드러지며, 인물에 대한 그의 과감한 표현들은 당시 잦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모델이자 동거녀였던 발레리와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미성년자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 때문에 함께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비엔나 근교의 노이렌바흐에 정착하며 작업을 계속 이어갔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이해받지 못했다.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문란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2주라는 길지 않은 기간동안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는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출소 후 자신의 에로티시즘적인 표현에 더욱 열정을 쏟아냈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인간의 몸은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본능에 사로잡힌 그로테스크한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28세, 짧은 생애

1915년 쉴레는 영감의 원천이자 에로틱한 작품들의 실제 모델이었던 여인, 발리와의 4년 간의 동거 생활을 정리하고 중산층 집안의 여인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게 된다. 부와 가난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그는 안정된 삶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1918년 클림트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뒤,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자연스레 클림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안정적인 삶도 아주 잠시. 실제로 쉴레의 시대가 시작된 듯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28세가 되던 해 가을에 아내 에디트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다. 전 유럽에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이 오스트리아에도 예외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리고 쉴레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은 지 사흘 만에 독감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28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에곤 쉴레가 남긴 내밀한 욕망의 초상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위로를 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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