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이 풍경과 빛에 녹아드는 순간들 ‘에드워드 호퍼’
사망한지 50년이 지난 현재,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아마도 향후 몇 십, 몇 백년간은 이 현상이 이어질 듯 하다. 수십년전 그려진 그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도회적인 감수성은 도리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의 풍경과 사람을 그린 작가들은 많은데 왜 그의 그림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일까.
그 풍경 속에 존재 하는 것 : 인간의 감정과 빛
때는 깊은 밤, 다이닝 레스토랑 혹은 바 bar 에서 나란히 앉아 있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는 위스키라든지 짙은 커피가 놓여 있고, 함께 앉아 있음에도 대화는 거의 없거나 주인과 가벼운 일상의 말들만 오갈 것 같다.
이렇게, 굳이 작가가 노골적으로 그들을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그림을 보면 누구나 많은 상상을 하게 되고 그림 속 사람의 심리상태가 추상적인 형태로 와닿게 된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을 짐작케 하거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들이 담겨 있다. 거기에 그만의 강력한 무기인 ‘빛’ 과 조명의 명암을 살려 그림 속 풍경에 특정한 무드를 불어 넣는다.
작가의 그림 속 풍경은 크게 실내 공간과 자연 풍광으로 나뉘어 진다.
도시 속 실내 공간을 묘사한 것과는 또 다른 풍경으론 철도와 버스 정류장, 인적 드문 시골로가는 길, 등대가 있는 강가에 위치한 주택 같은 곳이다. 즉, 독특함보다는 평범한 모든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관찰하며 그 풍경이 지속적으로 정신에 새겨지는 어떤 느낌들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러한 풍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만의 감정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으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비극적인 운명에 처했거나 시름에 빠져 있다기보다 해묵은 걱정과 금세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생각하는, 바로 우리 주변의 흔히 볼 수 있는 지인들이나 나 자신 같다. 그렇기에 차가운 평화로움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영역인 ‘빛’ 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한 부분이다. 빛을 활용하여 공간에 대한 존재감과 마치 그 공간에 누군가가 있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위 그림을 보면, 뒷쪽으로 들어오는 빛은 지루하고 평범하나 바다를 정면에 두고 들어오는 환한 빛은 마치 누군가가 뛰어 내리거나 방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일순 간단하지만 빛 만으로 이러한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게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탁월한 표현력일 것이다. 실제 이 그림의 별칭은 ‘Jumping Off Place’ 였다고 하는데, 굳이 이런 별칭을 모르더라도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이런 상상을 하게 하는 묘사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색상, 빛, 명암으로 주조해낸 그의 세계에선 인간의 감정이 느껴진다. 거기에, 풍경이나 인간의 감정 모두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고 한개의 그림에서도 절반의 비율로 안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림을 바라보며 그림 속 인물들에 동질감을 느끼고 마치 저 풍경 속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 그리고 그림 속의 이런 ‘순간’ 들은 시대가 흐르고 풍경이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고 영속성을 가진다는 점이 에드워드 호퍼가 깊게 전하는 메세지일 것이다.